- 서울 삼성병원에 가다


셋째 처형과 함께 아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을 찾아가니 활달하신 교장선생님은 무척 걱정을 많이 하여 주시며 유치원 원장을 하는 자기 친구도 얼마전에 직장암 수술을 받았는 데, 이 친구한데 가면 많은 도움을 얻을 것이라고 도와 주신다.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 통화가 되어 유치원 원장을 하시는 분의 댁으로 찾아갔다.

유치원 원장선생님(인천 선혜유치원, 김영숙 원장)댁으로 찾아 가니 무척 반갑게 맞이하여 주시며, 암치료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은 물론 암에 관한 책과 더불어 자기가 먹고 있는 몸에 좋은 식품도 잔뜩 주신다. 자기는 직장암임을 알고(1~2기 정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은 의사가 누구인가 알아 보니 서울 삼성 병원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분(외과, 전호경박사)께 수술과 진료를 받고있는 데, 매우 만족하며 좋다고 한다.

순간 나의 아내도 이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하면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 궁리를 한다. 마침 이 원장선생님이 진료를 받는 날이 있어서, 내가 모시고 진료를 받으러 가면 어떻겠냐고 제의를 한다. 원장 선생님이 동의를 하셔서 나는 며칠 후 이른 아침에 원장 선생님댁에 가서 원장 선생님을 모시고 서울 삼성병원에 간다.

원장 선생님의 진료가 마칠 무렵, 원장 선생님이 담당의사(전호경 박사)에게, "제 조카가 응급으로 인하대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았는 데, 나머지 치료는 선생님한데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십니까?"라며 요청을 하니, 의사가 의외로 쾌히 승락을 한다. 순간 나는 얼마나 기뻣는 지 모른다. 아내를 살릴 수 있는 첫번째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 아내에게 어떻게 말해주나

암판정을 받았을 경우 환자에게 누가, 언제, 어떻게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나의 아내의 경우에 있어서는 수술후 어느 정도 회복이 될 때가지는 숨기기로 했다. 이유는 환자가 알아야 걱정만 하고, 병치료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알려주어야 할 힘든 과제이다.

수술을 받은 뒤 일주일이 넘고, 이제 봉합한 실도 빼는 등 아내도 원기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게 되어 힘들더라도 이제는 알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특히 병문안을 오는 사람들의 언행이 이상하다는 눈치를 조금씩 차리고 있는 아내에게 더 이상 비밀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당분간 병문안 오는 사람들에게는 아내에게 비밀을 유지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내의 병을 치료하는 데에 최종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나이고, 또 아내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는 없다는 생각에 주저없이 내가 이야기 해주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이야기 해주어야 아내가 실망하지 않고 투병에 대한 자신감과 희망감을 갖게 하느냐의 문제였다.

아내의 심신 상태가 그래도 안정적이어 잘만 말하면 괜찮을 것이다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몇 번이나 마음속에서 되새겼던 말문을 연다. "당신 너무 놀라지마, 당신도 조금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대장이 막혔던 것은 사실 암 때문이었어, 병기는 약 2~3기 정도 되는 데,나와 당신이 신경쓰고 노력하면 충분히 살 수 있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마, 알았지?"

이런 나의 말을 들은 아내는 내심 무척 놀랐고, 절망감도 느꼈겠지만, 겉으로는 그리 놀라거나 절망감을 느끼는 모습이 아니었다. 충분히 살수 또 살릴 수 있다는 나의 말과 눈빛으로 진실의 정도를 헤아리는 듯 나를 응시했다. 아내는 다행히 나의 말을 많이 믿어 주는 모습이었다. 이런 아내의 모습에 나는 참으로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또 하나의 고비를 넘겼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 암 보험금을 타다

아내가 암치료를 받으며 참으로 다행스러웠던 것은 치료비에 대한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내는 암판정을 받기 몇달 전에 학교로 찾아온 보험사 직원의 권유로 일반 보험에서 암 보험으로 바꿨었다. 이렇게 보험의 종류를 바꾼지 몇 달이 되지 않아, 아내는 암판정을 받고 암에 대한 보험료를 받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아내가 그동안 불입한 보험료는 250만원정도 였는 데, 두군데의 보험회사로 부터 받은 치료비는 2천만원이었다.

이 2천만원은 본래 아내의 암치료를 위해 생긴 돈인 만큼, 아내의 암치료를 위해 아낌없이 쓰기로 생각한다.

장인 어른께서 수술비를 내주신 이유도 있었지만, 몸에 좋다고 하는 식품 또,지금 같아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370만원이나 되는 일제 반식욕 장비도 구입했다(당시 국산은 없었음). 수술후 항암치료를 받는 등 암치료를 위한 비용이 꽤 들었지만 1년이 지난후 치료비를 계산해 보니 약 천만원 정도가 들어갔다. 따라서 보험회사에서 받은 치료비는 1년동안 들어간 돈을 제외하고도 천만원이 남아 이 돈은 적금을 들게 된다. 평소 암보험을 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남 몰래 흐르는 눈물

나는 주간에는 학교로 출근을 하며 밤에는 아내의 옆을 지켰다. 아침에 일어나 병원 샤워실에서 샤워를 한 다음 학교로 출근하고 퇴근을 하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집에는 어머님께서 오셔서 살림을 해주시며 어린 손녀딸들을 보살펴 주셨다. 난 내가 건강하거나 체력이 좋지 않으면 아내를 제대로 보살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일요일 아침이면 아내에게 양해를 구한 뒤, 조기 축구회에 가서 축구를 하고 오는 등 나의 체력 유지에도 신경을 썻다.

아직 아내가 인하대 병원 병상에 누워있을 때 겨울의 일이다. 바닦은 군데 군데 얼어있고, 나뭇잎은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의 모습은 황량한 전형적인 겨울의 모습이었다. 나의 새차 순서를 기다리며 차에 앉아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는 데, 마침 평소 내가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고요'란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 눈이 온다고요....."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 눈이 온다고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를 생각하게 되니 눈물이 핑돈다. 아내는 내년 겨울 첫눈이 오는 것을 볼 수 있을까? 눈물은 남몰래 더 많이 흐른다.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으며, 어떻게 해서라도 아내를 꼭 살리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출처 : 사이트 <런 다이어리>